2025년 현재, 기업은 유무형 자산을 넘어서 디지털 자산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심지어 대기업조차도 임직원이 퇴사하거나 사망했을 때 남겨지는 계정, 이메일, 클라우드 접근 권한 등 디지털 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무관심은 때로 사업적 위기나 보안 사고, 지속 가능한 운영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특히 MZ세대가 기업의 핵심 실무자로 자리 잡고 있는 지금, 업무와 개인의 경계가 흐려지며 회사 자산과 개인 계정이 뒤섞이는 현상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사내 구글 워크스페이스 계정, 슬랙 채널, 에어테이블, 노션, 클라우드 서버까지, 사라진 계정 하나가 수십 개의 업무 자산을 통째로 잠그는 디지털 단절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기업이 간과하기 쉬운 디지털 유산의 실질적인 위험성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임직원 계정 관리의 중요성을 실용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디지털 유산이 기업에 남기는 실제 피해 사례
기업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디지털 계정이라는 개인화된 자산이 남기고 떠난 흔적은 종종 기업의 정상 운영을 위협한다.
퇴사자 계정 접근 불가로 업무가 정체된 사례가 있다. A 스타트업은 핵심 개발자가 퇴사 후, AWS 클라우드 계정과 소스코드 저장소(GitHub)의 관리자 권한을 넘겨주지 않고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제품의 업데이트가 수개월간 중단되었고, 클라이언트와의 계약까지 손해로 이어졌다.
또 다른 사례는 사망한 팀장의 이메일 접근 불가 사례다. B 중견기업은 영업팀 팀장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의 이메일 계정에만 저장된 미체결 계약서, 클라이언트 커뮤니케이션 내역, 비공식적인 지시사항에 접근할 수 없었다. 해당 건은 이후 법적 분쟁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1인 사업자가 남긴 콘텐츠 수익 채널이 묻히는 사례도 많다. 혼자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던 1인 기업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가 등록해둔 구글 애드센스 계정, 유튜브 채널, 스마트스토어 관리자 권한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매달 발생하던 수익은 자동으로 중단됐고, 해당 사업은 사실상 정리되었다.
기업이 놓치기 쉬운 계정 관리 허점들
디지털 유산 리스크는 명확하지만, 많은 기업은 여전히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특히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기업일수록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아 문제는 더 커진다.
첫 번째 허점은 개인 계정으로 만든 업무 플랫폼이다. 초기 스타트업은 실무자가 개인 지메일이나 개인 폰 번호로 구글 드라이브, 노션, 슬랙, 스마트스토어 관리자 계정을 생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퇴사 시 ‘회사 계정’이라는 근거가 없어, 접근 권한 회수나 관리가 어렵다.
두 번째 허점은 공식 계정이 있어도 단독 관리자 구조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기업은 계정을 만들어두지만, 대부분 한 명의 직원에게만 관리 권한이 집중돼 있다. 이 경우 관리자 사망 또는 퇴사 시 복구가 매우 까다로워지고, 플랫폼에 계정 소유권을 증명할 방법도 불명확하다.
세 번째는 법적 대응을 위한 사전 문서화 미비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직원의 계정 및 접근 권한 리스트를 문서화하거나 백업하지 않는다. 플랫폼 측에서 사망 증명서, 상속자 증빙, 회사 명의 증명 등을 요구해도 정리된 문서가 없으면 대응이 불가능하다.
디지털 유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실천 전략
첫째, 업무용 계정은 반드시 회사 명의로 분리해야 한다. 모든 SaaS(구독형 소프트웨어) 계정은 회사 명의 이메일 또는 사내 도메인 기반 이메일(@company.co.kr)로 생성해야 한다. 개인 지메일이나 네이버 메일은 절대 업무 등록에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관리자 계정은 최소 2인 이상 설정해야 한다. 플랫폼마다 슈퍼 관리자 또는 공동 소유자 개념이 있다. 유튜브, 구글 워크스페이스, 슬랙, 노션 등은 모두 공동 관리 구조를 지원하므로 반드시 설정해야 한다. 단독 관리자 구조는 기업 보안에 치명적이다.
셋째, 정기적인 계정 및 자산 점검 시트를 운영해야 한다. 분기마다 사내 전체 계정의 관리자, 이메일, 백업 여부를 점검하는 디지털 자산 관리 시트를 운영하면 된다. 구글 스프레드시트 또는 노션으로도 간단히 구현 가능하며, 정기 점검을 통해 누락된 계정, 사망 또는 퇴사 계정 리스크를 사전에 줄일 수 있다.
넷째, 디지털 유산 대응 매뉴얼을 문서화해야 한다. 사망, 퇴사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디지털 유산 대응 매뉴얼에는 다음 항목이 포함되어야 한다. 사망 시 업무용 계정 접근 방식, 플랫폼별 소유권 이전 절차, 백업 자료 위치, 계정 관련 서류 증빙(사업자등록증, 사망확인서 등) 등을 미리 정리해두면 플랫폼 고객센터에 공식 요청할 수 있는 실질적 근거가 된다.
기업의 디지털 생존은 계정 관리에서 시작된다
디지털 유산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기업도 사망, 퇴사, 이직이라는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디지털 자산의 안전성과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2023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보고서에 따르면, 100인 이상 중소기업 중 78%가 직원 퇴사 후 계정 정리를 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관리 미비가 아니라, 보안과 업무 연속성, 나아가 법적 분쟁 가능성까지 불러올 수 있는 심각한 리스크다.
이제 기업은 디지털 유산을 정리해야 할 나중의 문제가 아닌, 오늘 당장 점검하고 대비해야 할 리스크 관리 항목으로 인식해야 한다. 계정을 남기는 일이 아닌, 조직을 지키는 일로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2025년을 살아가는 기업의 기본 전략이자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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