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아이템 및 계정 등의 디지털 유산 상속 문제
디지털 자산이 일상생활과 깊이 연결되면서, 이제는 현실 세계의 유산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획득한 자산 역시 중요한 상속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MMORPG, FPS, 수집형 게임 등에서 고가의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보유한 계정은 실제 금전 가치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이러한 자산은 단순한 ‘게임 속 도구’가 아니라, 노력과 시간, 실제 금전적 투자로 축적된 디지털 재산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가치 있는 게임 계정이나 아이템이 디지털 유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법적으로 상속 가능한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게임 아이템 및 계정을 둘러싼 디지털 유산 상속 문제의 현실, 법적 쟁점, 플랫폼 정책, 생전 준비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디지털 유산으로서의 게임 아이템과 계정의 현실적 가치
현대의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하나의 경제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리니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던전앤파이터, 로스트아크, 메이플스토리, 블레이드앤소울과 같은 장기형 RPG 게임에서는 아이템, 캐릭터, 계정이 하나의 자산 형태로 거래된다. 실제로 고렙 계정 하나가 수천만 원에 판매되기도 하며, 게임 내 화폐가 현실의 화폐와 환산 가능한 구조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게임 아이템과 계정은 명백한 디지털 유산이다. 사망한 유저가 오랜 시간 키운 캐릭터, 희귀한 장비, 한정판 스킨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닌, 상속 가능한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리자드 계정에 묶여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캐릭터는 서버와 연동되며, 그 안에 수년간의 결제 내역과 보유 아이템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게임사들은 ‘계정은 서비스 제공자의 소유이며, 이용자에게는 이용권만 부여된다’는 약관을 두고 있어, 사망 이후에도 계정 자체는 상속 불가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실적인 가치와 법적 권리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
디지털 유산 상속에서의 법적 쟁점과 미비점
한국 민법은 ‘재산’의 상속을 기본 원칙으로 하지만, 디지털 자산이나 게임 계정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 이로 인해 게임 계정이나 아이템은 기존 상속법상 ‘재산’으로 해석되기 어렵거나, 게임사 약관에 따라 권리가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법적으로는 게임 계정이 사용자의 소유가 아니라면, 상속 대상이 되지 않으며, 이는 고인이 생전 실제 돈을 지불하고 획득한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수백만 원을 들여 만든 캐릭터를 가족이 넘겨받고 싶어도, 게임사는 약관에 따라 “계정 공유 및 양도는 금지”라고 안내하고, 해당 계정을 삭제하거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
또한 법원에서도 아직 게임 계정을 ‘재산’으로 명확히 판시한 판례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은 플랫폼 사업자의 서비스 이용 규정에 따를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족이 민사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현실적인 승소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결국, 게임 자산의 법적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디지털 유산으로서의 게임 계정 상속은 여전히 회색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다.
플랫폼 약관과 디지털 유산 계정 처리의 실제
대부분의 게임 플랫폼은 사망자의 계정이나 아이템을 상속하거나 이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넥슨, 엔씨소프트, 블리자드, 스팀 등 주요 플랫폼의 이용 약관에는 계정의 소유권이 회사에 있으며, 유저는 단지 ‘서비스 이용 권한’을 가질 뿐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러한 약관 조항은 사망자 계정을 가족이 요청하더라도, 이를 열람하거나 이전받을 수 없게 만든다. 심지어 유족이 사망진단서와 관계 증명서, 본인 신분증을 제출해도 “개인정보 보호 및 약관상 양도 불가”를 이유로 거절되는 경우가 많다.
단, 일부 플랫폼은 사망자의 계정에 저장된 재화나 포인트 잔액을 환불하거나 정지하는 방식으로 유산을 간접 처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팀에서는 계정 자체 양도는 불가능하지만, 계정 내 게임이나 아이템의 존재 여부를 유족에게 안내해주는 사례가 있다.
이처럼 현실에서 디지털 유산으로서의 게임 계정과 아이템은 명백히 가치가 존재하지만, 법적 권리로 인정받지 못하고 플랫폼 규정에 따라 제한되는 구조다. 이 문제는 결국 사회적 합의와 법제 정비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생전 정리와 유언장에 게임 계정 포함하기
게임 아이템이나 계정이 상속 대상이 되기 어려운 현실이라 하더라도, 생전의 정리와 유언장의 작성은 매우 중요한 준비 방법이다.
첫째, 게임 계정 목록과 로그인 정보를 안전한 곳에 정리해두고, 가족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예: 비밀번호 관리자 앱, 디지털 금고 등)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둘째, 유언장에 ‘게임 계정에 대한 접근을 허용한다’는 문구를 명시하고, 해당 자산을 누구에게 넘길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해두면, 이후 가족이 게임사와의 협의 과정에서 참고할 법적 근거가 생긴다.
셋째, 계정 내 아이템이나 포인트의 실제 가치 및 결제 내역을 정리해두면, 상속세 문제나 재산 평가 과정에서 참고할 수 있다.
게임 자산은 비록 현실 법제도에서는 아직 완전한 디지털 유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사용자 개인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생전 준비를 통해 유족에게 피해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향후 디지털 자산의 법적 지위가 명확해질 경우, 지금의 정리 작업이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게임 자산도 소중한 디지털 유산이다
게임 속 캐릭터와 아이템은 단순한 오락 요소가 아니라, 사용자의 시간과 돈, 감정이 축적된 자산이다. 비록 법률과 플랫폼의 제약으로 인해 현재는 완전한 상속이 어려운 구조지만, 그 가치만큼은 현실 자산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의 사회는 디지털 공간에서의 활동과 재산을 법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며, 게임 자산은 그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전의 디지털 유산 정리를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고, 가족에게 올바른 가이드를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