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을 국가가 관리한다면 생길 수 있는 문제들
누군가의 삶이 끝난 뒤에도 남는 것들이 있다. 과거에는 그것이 편지나 일기장, 책상 서랍 속 유품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그 흔적들이 디지털 데이터로 남는다. 고인의 스마트폰 속 사진, 클라우드에 저장된 문서, SNS 게시물, 이메일, 영상 파일, 인터넷 검색 기록까지—그 모든 것이 ‘디지털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진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유산의 법적 처리와 윤리적 기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관련 논의가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극단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만약 이 모든 디지털 유산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관리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공공 자산처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개인정보 침해, 프라이버시 상실, 가족의 감정적 권리 박탈 등 다양한 문제가 동시에 제기된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유산을 국가가 관리하는 구조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윤리적, 현실적 문제를 단계적으로 살펴본다.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고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인격권의 소멸
디지털 유산에는 고인의 가장 개인적인 정보가 담겨 있다. 사적인 메모, 감정 표현이 담긴 일기, 가족 간의 메시지, 친구들과의 대화, 혹은 삭제하지 못한 미완의 글들까지—모두가 고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흔적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국가가 수집하고 보존한다는 전제는, 고인의 동의 없이 개인 기록을 공공 데이터로 전환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 자체가 심각한 인격권 침해이며, 사망자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디지털 유산의 대부분은 생전 고인이 남긴 ‘공개되지 않은’ 기록이다. 이러한 데이터가 유족도 모르게 정부 서버에 백업되고, 국가기관이 접근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면, 죽음 이후에도 개인은 국가의 감시 속에 놓이게 된다. 결국 개인의 삶이 죽음 이후에도 ‘정보’로만 분류되어 다뤄진다면, 인간 존엄성의 훼손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유족의 감정과 선택권이 배제될 수 있는 문제
디지털 유산은 법적 자산이기 이전에 감정의 대상이다. 자녀는 부모가 남긴 사진 한 장, 연인의 메시지 하나에서 위로를 받는다. 국가가 사망자의 유산을 일괄 보관하거나 삭제하도록 제도화한다면, 유족은 고인의 흔적에 접근하거나 보존하는 방식에 있어 감정적인 선택의 자유를 잃게 된다. 가령, 어떤 유족은 고인의 블로그를 남기고 싶어 하지만, 다른 유족은 삭제하길 원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정부 시스템이 “표준 절차”에 따라 자동으로 데이터를 폐기하거나 제한된 방식으로만 열람할 수 있게 한다면, 유족 개개인의 애도 방식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개인정보보호라는 명목으로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거나, 가족관계증명서, 사망신고서 등 과도한 서류를 요구할 경우, 오히려 유족은 고인을 기억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제대로 얻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시스템 의존으로 인한 기억의 획일화 위험
국가가 모든 사망자의 디지털 유산을 자동적으로 분류하고 저장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기억은 ‘데이터’가 되고, 인간의 삶은 ‘서버에 남은 기록’으로만 환원될 수 있다. 즉, 인간의 고유한 서사와 감정은 사라지고, 단순한 로그 파일이나 계정 정보로 재구성된다. 예를 들어, 국가는 사진, 문서, 대화 등의 데이터 유형을 기준으로 자동 필터링하여 저장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부분—메모 속 감정, 사진에 담긴 의미, 메시지의 뉘앙스—는 삭제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결과적으로 고인의 삶을 ‘정량적 정보’로만 보게 만들며,
디지털 유산이 갖고 있는 정성적 가치는 점차 사라지게 된다. 기억의 방식이 정부 시스템에 의해 규격화된다면, 인간의 죽음은 점점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의 한 항목으로 취급될 위험이 있다.
디지털 유산은 공공 데이터가 아닌 ‘개인 서사’로 남아야 한다
디지털 유산은 기록이지만, 단순한 정보는 아니다. 그 안에는 고인의 감정, 관계, 생각, 흔적이 담겨 있으며, 이는 유족에게 위로와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도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유족이 전혀 없는 고독사의 경우, 범죄나 사회적 이슈에 연관된 기록이 있는 경우 등은 공공기관의 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대부분의 디지털 유산은 개인의 삶 속에서 정리되고, 가족이나 지인에 의해 보관되며, 선택적으로 삭제되거나 보존되어야 한다. 국가가 디지털 유산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게 될 경우, 인간의 죽음은 공공 시스템에 흡수되고, 개인의 고유한 기억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디지털 유산은 살아 있는 개인과 가족이 주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자율적이고 유연한 체계가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죽음을 돕는 방식은, 데이터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존중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