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세대 갈등, 부모의 계정을 삭제할 수 있을까?

miguel0831 2025. 7. 14. 14:00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SNS 계정, 블로그, 이메일은 여전히 온라인에 남아 있다. 이 디지털 흔적들을 지울 것인가, 남길 것인가는 단순한 정리의 문제가 아니다. 자녀 세대는 실용적·기술적 관점에서 '삭제'를 원하지만, 부모 세대의 기억을 지우는 일이라는 정서적 저항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가족 간, 특히 형제자매 간에 갈등이 생기거나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충돌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세대 갈등에 대한 글

 

“부모님의 블로그를 삭제하자”는 자식과 “그건 우리 부모의 유산이다”라고 말하는 형제 사이의 입장 차이는 작지만 깊은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 2025년 현재, 이런 세대 간 디지털 유산 갈등은 점점 더 다양한 가족 안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부모의 계정을 둘러싼 삭제 여부 판단, 감정적 충돌, 법적·문화적 문제를 함께 살펴본다.

 

자녀 세대는 왜 디지털 유산의 ‘삭제’를 선택하는가?

오늘날 자녀 세대는 대부분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고, 데이터 정리에 대한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부모님의 SNS, 블로그, 이메일 계정이 계속 남아 있으면 스팸 메일, 해킹 위험,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 등을 걱정하게 된다. 또한 사망자의 이름으로 광고 메일이나 자동 알림이 계속 도착하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많은 자녀들은 “정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계정 삭제를 추진한다.

 

특히 2030세대는 '데이터도 유한한 자원이며, 정리와 폐기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가진다. 그들에게는 고인의 계정이 마치 '정리되지 않은 서랍'처럼 느껴지며, 미처 삭제하지 못한 흔적은 마음의 짐이자 책임의 대상이 된다. 이런 현실적 접근은 감정보다는 관리의 필요성에서 출발한 것이며, 기술 중심의 세대가 가진 데이터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부모 세대의 흔적을 지운다는 것에 대한 감정적 저항

반면 형제자매나 친척 등 다른 가족 구성원은 정리보다는 ‘기억의 보존’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어머니가 올린 요리 블로그 글, 아버지가 남긴 손편지 스캔본, 여행 사진이 담긴 계정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고인의 삶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계정을 삭제하는 것은 고인을 지우는 일이며, 가족의 역사를 정리 없이 사라지게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특히 4050세대는 아직도 디지털 공간에 남겨진 흔적을 ‘기억의 저장소’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세대에게는 계정 하나하나가 고인의 존재를 상징하며, 그것이 사라질 경우 감정적 단절이 따라온다. 이처럼 같은 가족 안에서도 데이터에 대한 정서적 의미는 세대에 따라 매우 다르게 인식된다.

 

법적 기준과 문화적 합의의 부재가 갈등을 키운다

현재 한국에서는 사망자의 계정에 대한 법적 권한이 명확하지 않다. 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플랫폼은 유족에게 계정 접근을 허용하되, 조건과 서류가 매우 복잡하다. 또한 사망자의 명시적 동의 없이는 유족이 자유롭게 삭제하거나 백업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처럼 플랫폼 정책이 제각각이고,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률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가족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가 된다.

 

이 과정에서 ‘누가 고인의 의사를 가장 잘 아는가’, ‘누가 결정권을 가지는가’에 대한 논쟁이 발생한다. 가족 간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부가 독단적으로 계정을 삭제하거나 공개하면, 그 자체가 신뢰와 관계의 손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적 공백은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세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원인이 된다.

 

삭제냐 보존이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

디지털 유산을 삭제할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 선택 뒤에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기억, 감정, 해석이 존재한다. 계정을 삭제하는 자녀는 효율과 보안을 생각하고, 이를 반대하는 가족은 감정과 기억을 지키려는 것이다. 이 양쪽 모두가 틀린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계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사후가 아닌 생전에 정리하고 소통해야 하는 주제이다. 디지털 유언장이나 계정 처리 계획, 가족과의 정보 공유 등을 통해 고인의 의사를 미리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갈등을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술이 아니라, 기억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디지털 유산이 분쟁의 씨앗이 아니라, 가족 간 대화를 이끄는 연결고리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