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디지털 유산, 법적으로 상속 가능한가요? 현행법과 현실의 차이

miguel0831 2025. 6. 25. 04:00

디지털 유산은 분명한 상속의 대상이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법제도는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논리 아래 유족의 접근권은 철저히 제한되고 있으며, 그 결과 많은 디지털 자산들이 그대로 소멸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관련 법률이 점차 정비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

디지털 유산, 법적으로 상속 가능 여부와 현행법과 현실의 차이

지금 내가 남긴 기록들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흔적이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법이 준비되지 않아도, 우리는 준비할 수 있다.

 

⚖️ 디지털 유산이 상속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과거에는 상속이라 하면 부동산, 예금, 자동차 같은 눈에 보이는 유산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현실 속 자산보다 온라인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메일, 사진, 클라우드, 블로그, SNS, 온라인 게임 아이템, 유튜브 채널, 웹사이트 운영권까지. 이 모든 것들은 물리적인 형태는 없지만, 분명한 재산적·정서적 가치를 지닌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이러한 온라인 흔적들이 어떻게 처리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디지털 유산이 아직까지 명확하게 '법적 상속 대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민법 제1005조에 따르면 '상속은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그 재산상의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산상의 권리'라는 문구다. SNS 계정이나 이메일 주소가 재산인가? 아니면 단순한 서비스 이용권인가? 이 모호한 경계 때문에, 디지털 유산의 법적 상속 가능성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 현행법의 한계: 개인정보 보호와 상속법 사이에서

디지털 유산 상속의 법적 논의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개인정보보호법과의 충돌이다. 고인이 사망한 이후, 유족이 그 사람의 계정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업체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유족의 접근 요청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내 대형 포털이나 SNS 플랫폼은 사망자 계정에 대해 별도 정책이 없거나, 유족이 어떤 자료도 열람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예를 들어, A씨는 사망한 아버지의 이메일 계정에서 중요한 계약서와 금융자료를 찾기 위해 접근을 시도했다. 하지만 구글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자료 제공을 거절했고, 결국 법원에 자료 보존 신청을 냈지만 승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현행법상 디지털 자산에 대한 유족의 접근권이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디지털 유산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상속등기나 등록 과정 없이 소멸되기 쉽다. 부동산처럼 명의 이전을 하지 않으면 불법 소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계정 비활성화 → 삭제' 순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유산의 소실을 촉진시키고, 가족 간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결국 현재의 법은 디지털 유산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기술보다 한참 뒤처져 있는 셈이다.

 

🛠️ 외국의 사례: 미국·독일·일본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해외는 디지털 유산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법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5년,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라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유족이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서비스 제공자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계정을 제공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다만, 사망자가 생전에 남긴 유언이나 계정 설정이 우선 적용된다는 조건이 붙는다.

독일 역시 2018년 연방법원 판결을 통해 "페이스북 계정은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디지털 자산의 상속 가능성을 인정했다. 이 판결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독일의 주요 SNS 서비스들은 사망자 계정에 대해 유족의 접근을 일부 허용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일본도 최근 몇 년 사이 고령화와 함께 디지털 유산 논의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일부 법률 서비스 플랫폼이 디지털 유언장 작성을 돕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러한 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법과 윤리, 개인의 권리와 유족의 접근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러한 디지털 상속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 대비 방법

법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개인 차원에서 디지털 유산을 대비할 수 있다. 우선 디지털 자산 목록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사용하는 이메일, SNS, 클라우드, 구독 서비스, 도메인, 블로그, 유튜브 등의 계정 리스트를 만들고, 각각의 로그인 정보와 연관된 데이터 현황을 간단하게 메모해두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로는 사후 계정 처리 기능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구글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 애플의 '디지털 상속자', 페이스북의 '기념 계정 설정'처럼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사후 계정 처리 기능을 미리 설정해두면, 유족이 법적 분쟁 없이 해당 계정을 관리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디지털 유언장을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직은 법적 효력이 불분명하지만, 유족 입장에서 해석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디지털 콘텐츠가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주길 원하는지 미리 가족에게 이야기해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이다. 감정적 상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기록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유산은 '지금' 준비해야 한다.